가끔 아내는 집에서 시루떡을 만든다.
요즘 젊은이들이 누가 그리 떡을 먹겠는가. 남은 시루떡은 냉장고에 들어가게 되고 며칠간 홀로 독차지하게 된다.
동지 팥죽과 시루떡을 만든 속뜻은
오랫동안 하얀 떡가루와 삶은 팥이 담긴 비닐 봉지가 냉동실에 보관되어 왔다.
오늘은 동짓날, 아내는 시루떡을 하겠다고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번 해왔던 터라 그러려니 했는데, 떡과 함께 팥죽도 만들겠다고 바쁘게 움직인다.
작은 시루에는 떡가루와 팥이 차례대로 들어간 후, 가스레인지에 올려졌다. 바로 옆 인덕션에는 팥죽이 끓기 시작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을 보고 잠시 외출을 하고 돌아오니, 현관문 앞에 팥죽이 한 그릇 놓여있다. 참,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다.
오래 전, 고향 시골집에서 동지가 돌아오면, 어머니는 팥죽을 쑤셨다. 가족이 둘러앉아 새알심을 만들곤 했다.
반죽된 큰 쌀가루 덩어리에서 소량을 떼내어 양 손바닥 사이에 끼고 여러 번 문지르기를 반복하면, 동그란 새알심이 생겼다. 가마솥에 팥을 삶은 후, 팥죽을 끓일 때는 큰 아궁이에 활활 타오르는 불을 지폈다.
팥죽이 완성되면, 작은 그릇에 팥죽을 퍼서 대문 앞과 장독대 등 여러 곳에 갔다 놓았다. 시루떡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팥죽과 시루떡을 왜 대문 앞과 장독대 등 집안 곳곳에 갔다 놓았을까.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대문에 뿌리면, 악귀를 물리친다는 믿음이 있었나 보다.
시대마다 방법이야 달라지겠지만, 귀신과 액운을 멀리 쫓아내서 평안하고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듯하다.
구약성경에 이스라엘 민족이 노예로 살다가 애굽땅을 떠나가는 이야기가 있다.
10번째인 마지막 재앙, 모든 장자가 죽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 민족은 문설주와 인방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 재앙으로부터 보호를 받은 내용이 나온다.
10번째 재앙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애굽의 노예생활로부터의 해방되어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 바로 유월절이다.
오순절, 초막절과 함께 유대교의 3대 절기 중 하나인 유월절은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많이 전해 들은 이야기다.
동짓날 붉은 팥죽을 만들어 악귀를 쫓는 풍습과 유월절의 이야기는 흡사한 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 어느 지역에서 살고 있든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모양은 다르되 의미만큼은 비슷한 듯하다.
참, 오랜만에 현관문 앞에서 악귀를 쫓는 팥죽 한 그릇을 보게 되었다.
맛있는 팥죽 한 수저를 떠 먹고, 시루떡 한 조각을 먹어본다.
청룡의 해인 내년에는 올해보다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악귀와 재앙으로부터 보호되고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2023.12.20 - [일상] - 올 동지에도 영양 많은 우리 팥으로 든든하게, 팥수제비, 단팥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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