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성주사지 석탑 기행
보령 성주사지 주차장에 도착했다. 넓은 공터 주위로 돌담장 둘러있다.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성주사지 오층석탑이 절터였음을 알려주는 듯하다.
먼저 오층석탑, 뒤에 있는 삼층석탑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낭혜화상탑비가 있는 순서대로 돌아가며 탑의 특징을 살펴보며 해설을 들었다.
- 성주사지(聖住寺址)
보령 성주산 남쪽 기슭에 있는 9산선문의 하나인 성주사가 있던 자리이다. 백제 법왕 때 처음 지어졌는데 당시에는 오합사(烏合寺)라고 부르다가, 신라 문성왕 때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이 절을 크게 중창하면서 성주사라고 하였다.
산골에 자리 잡고 있는 절이지만, 통일신라시대의 다른 절과는 달리 평지에 자리하는 가람의 형식을 택하였다. 절터에는 남에서부터 차례로 중문처, 석등, 오층석탑(보물 제19호), 금당 건물과 그 뒤에 동서로 나란히 서있는 동 삼층석탑(보물 제2021호), 중앙 삼층석탑(보물 제20호), 서 서층석탑(보물 제47호)가 있고 그 뒤에 강당이 자리하고 있다.
최치원의 사산 비문 중 하나인 대낭혜화상탑비(국보)도 절의 북서쪽에 있다. 발굴조사 결과 건물의 초석, 통일신라시대의 흙으로 빚은 불상의 머리, 백제·통일신라·고려시대의 기와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성주사는 당대 최대의 사찰이었으며, 최치원이 쓴 대낭혜화상탑비는 신라 석비 중 가장 큰 작품으로 매우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 성주사지 석 계단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성주사의 금당에 오르는 돌계단이다. 이 계단 양쪽에는 사자상을 조각하여 세워 놓았는데, 그 조각 수법이 뛰어났다. 그러나 1986년 도난당하고, 현재 것은 사진을 기초로 복원한 것이다.
-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
화강암으로 된 이 석탑은 성주사의 불탑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2중 기단 위에 세운 오층석탑으로 전체 높이는 634㎝이다.
기단부와 옥개석, 탑신석이 완만하게 균형을 이루면서 위로 올라 갈수록 점점 좁아져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경쾌한 모습을 이루고 있다.
1층 몸돌에서 사리공이 있으며, 기단부와 1층 몸돌 사이에 괴임돌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통일신라 시대의 전형적 석탑 양식은 2중 기단 위에 3층 석탑을 세우는 것인데, 이 석탑은 2중 기단 위에 오층 석탑이 올려져 있다.
이는 이곳이 옛 백제의 영역이었으므로 백제탑과 신라 탑의 양식이 혼합된 것으로 보거나, 이 시기에 나타난 다양한 탑 양식 가운데 하나로 보기도 한다. 현재는 상륜부가 없어진 상태이다.
성주사지 석등
통일신라 말기에 세운 석등이다. 지붕돌에 비해 등불을 두는 화사석과 받침 기둥이 가늘게 만들어져 있으며, 팔각형 지붕돌 위의 상륜부가 파손되었다. 높이는 220㎝이고 재료는 화강암이며, 파괴되었던 것을 근래 수습하였다.
-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
성주사지 금당지 뒤의 3기의 석탑 중 서쪽에 있는 탑이다.
2중 기단 위에 만들어진 삼층석탑으로 면석과 탑신석에는 우주와 탱주가, 지붕돌에는 4단의 층급 받침이 새겨져 있는 등, 통일신라 말기의 전형적인 삼층석탑 양식을 띠고 있다. 화강암으로 되었으며, 높이는 443㎝이다.
이 탑은 지붕돌에 작은 구멍이 있는데, 이는 불교 행상 때 금동판이나 기타 장식품들을 매달아 탑의 화려한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현재 상륜부가 없어졌다.
이 탑은 승탑으로 추정되었으나 성주사 사적기에 적힌 바에 따르면, 정광, 가섭, 약사여래사리탑 중의 하나이며, 발굴 조사 결과 다른 곳에서 옮겨 온 것으로 밝혀졌다.
-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
성주사지 금당지 뒤의 3기의 석탑 가운데 가운데에 있는 탑이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고 강력한 국가를 상징하려고 초기에는 튼튼하고 높은 2중 기단을 가진 3층 석탑을 만들었는데, 통일신라 말기에 이르러서는 3층 석탑의 규모가 작아진다.
이 석탑은 규모만 축소되었을 뿐, 형식은 2중 기단 위에 삼층석탑을 세우는 통일신라 말기의 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재료는 반려암이며, 높이가 410㎝이고 상륜부가 없어졌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으며, 날카로운 윤곽의 지붕돌이 특징이다.
-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은 금당 터 뒤에 있는 3개의 석탑 중 동쪽에 있는 탑이다. 석탑 3개가 나란히 서 있는 것은 이례적인 것인데, 발굴조사 결과, 금당 앞에 오층석탑을 세워 1탑 1금당 형식의 가람 배치를 조성한 후, 뒤에 석탑 3개를 다른 곳에서 옮겨와 추가로 배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탑은 2중 기단 위에 세워진 3층 석탑으로 면석과 몸돌에는 기둥이 새겨져 있고, 지붕돌에는 4단의 층급 받침이 새겨져 있는 등 통일신라 말기의 전형적인 삼층석탑 양식을 띠고 있다.
1층 몸돌에는 문 그림을 새기고 그 안에 자물쇠와 고리를 도드라지게 새겼는데, 이는 몸돌 안에 있는 사리공에 부처의 유골이 모셔져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이 탑은 상륜부는 없지만 균형 잡힌 비례와 체감, 우수한 조형성을 갖추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국보)
통일신라 말기 성주사에 머무르면서 선문9산 중 성주산문을 일으킨 무염대사를 기리기 위하여 최치원이 왕명에 따라 지은 비석으로 10세기 초에 세워졌다.
이 비석에는 5,120여 자의 긴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최치원의 화려한 문장을 최인연이 해서체로 쓴 것이다.
내용은 무염대사의 성장과 출가, 중국에 유학하여 공부하는 과정, 귀국하여 성주사를 일으키고 불법을 전하는 과정 등이 기록되어 있어, 신라 선종사와 당시의 신분제도 연구 등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남포오석이 재료인 이 비석은 1천여 풍상을 견디며, 고스란히 남아있어 남포오석의 뛰어난 품질을 보여준다.
이 비는 최치원의 명문장과 완벽한 보존 상태, 뛰어난 조각술 그리고 웅장한 크기 등이 어우러져 통일신라 말기의 우리나라 고승 탑비들 중에서 최고의 비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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